블랙 프라이데이.
연말의 쇼핑 열기가 절정을 이루는 날이지만, 사실 나는 블랙 프라이데이에 물건을 사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나와는 거리가 먼 행사처럼 느껴지곤 한다.
왜 블랙 프라이데이에 물건을 사지 않았을까?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가 우리나라에서도 자리를 잡기 전, 해외구매에 대한 부담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언어 장벽, 복잡한 결제 시스템, 관세 문제 등은 나 같은 평범한 소비자에게 높은 장벽이었다.
요즘은 해외구매가 한결 쉬워졌다. 각종 플랫폼이 해외배송을 지원하고, 결제도 간편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해외구매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가 많아지면서 굳이 해외구매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선택지가 늘어났다.
그런데도 나는 블랙 프라이데이에 물건을 거의 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정말 사고 싶은 물건은 할인되지 않는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아무리 싸다고 해도, 집에 쌓아둘 공간도 없고 통장 잔고도 넉넉하지 않다.
결국, 사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욕망의 장바구니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소비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는 수백만 원어치의 물건이 담겨 있다.
물론, 대부분은 실제로 사지 않을 물건들이다.
사고 싶지만 당장 필요하지는 않거나, 가격이 부담스러운 물건들.
어쩌면 이 장바구니는 내 욕망의 주머니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장바구니에 담겨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이전에 담아둔 고가의 모니터, 작업 효율을 높여줄 모니터 암, 새로 출시된 사과 시계까지.
모두가 나의 ‘위시리스트’ 속에서 잠들어 있다.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에 혹시라도 세일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장바구니를 들여다보지만, 역시나 실망만 남는다.
117년 만의 첫눈과 현실
오늘은 117년 만에 11월 폭설이 내린 날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천으로 된 신발을 신고 나갔다가 발이 완전히 젖어버렸다.
추위 속에서 젖은 발을 보며 “새 신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장바구니에 또 하나의 신발을 추가할 뿐이었다.
그 신발은 장바구니 속 다른 물건들처럼 나의 욕망 속에서 머물다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쇼핑몰을 뒤지는 나 자신
협업 중에 옆자리 동료에게 화면을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듀얼 모니터가 있으면 더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다시 장바구니를 열어 모니터를 찾아보고, 모니터 암도 검색해본다.
혹시나 이번 블랙 프라이데이에 할인하지 않을까, 아니면 비슷한 제품 중 더 저렴한 것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쇼핑몰을 뒤적이는 나 자신을 보고 있으면 때때로 처량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지?’
‘차라리 이 시간을 책 읽는 데 쓰면 더 보람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있는 것으로 버텨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에도 버텨보기로 했다.
나는 풀소유를 원하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니 무소유를 하게끔 만든다.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들은 여전히 내 욕망 속에 남아 있지만, 나는 지금 있는 것으로 최대한 버텨보려고 한다.
신발은 젖으면 말리면 되고, 모니터를 돌려서 보여 줄 수 없으면 옆사람 의자를 끌고와 화면을 보여주면 된다.
그런 작은 절제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쇼핑몰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는 나 자신이 때로는 한심하게 느껴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도 삶의 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나는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욕망을 표현하고, 작은 선택의 여유를 즐기는 중일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
블랙 프라이데이는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에게 소비의 즐거움과 고민을 동시에 안겨준다.
나는 이번에도 장바구니를 닫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마 다음 달에도 내년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겠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소소한 고민과 선택 속에서 나만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으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내가 느끼는 작은 행복과 성장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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