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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일상

각자의 속도

by 똘똘이박사 2024. 11. 12.

오늘 아침 필사를 하면서 마음에 깊이 남는 글을 접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본, 나뭇등걸에 붙어 있던 나비의 번데기를
떠올렸다. 나비는 번데기에다 구멍을 뚫고 나올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오래 걸릴 것 같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몸을
굽혀 입김으로 데워 주었다. 열심히 데워 준 덕분에 기적은 일어나야
할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집이 
열리면서 나비가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어진 순간의 공포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비의 날개가 도로 접히더니 쪼그라들고
말았다. 가없은 나비는 그 날개를 펴려고 파르르 안간힘을 썼다. 나는
내 입김으로 나비를 도우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번데기에서 나오는
과정은 참을성 있게 이루어져야 했고, 날개를 펴는 과정은 햇빛을
받으며 서서히 진행되어야 했다. 그러나 때늦은 다음이었다. 내 입김은
때가 되기도 전에 나비를 날개가 온통 구겨진 채 집을 나서게 강요한
것이었다. 나비는 필사적으로 몸을 떨었으나 몇 초 뒤 내 손바닥 위에서
죽고 말았다.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 글을 필사하면서 얼마 전 보았던 TV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사랑의 속도가 다른 두 사람이 어찌저찌 결국 한 쌍의 커플이 되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속도가 빠른 사람은 상대을 기다려 주고, 체근하지 않는다. 배려하는 마음이다.

나의 속도에 상대방을 맞추려고 하면 결국 파국을 맞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아이는 느리고, 어떤 아이는 빠를 것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빠른 아이에게 기준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기준에 맞춰 느린 아이를 다그 친다면, 아이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니 우리 아이도 느린 편이다.

나는 특별히 학구열에 불타는 학부모는 아니기에 아이가 원하지 않는 학원은 굳이 보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평균치에서 벗어날 때면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다그치게 된다.

뛰어난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또래보다 못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런 미묘한 마음이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나의 마음이 알게 모르게 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작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이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갈지 모른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나비 이야기처럼, 나의 조급함이 아이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나비처럼 자신만의 리듬과 속도로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기다리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아이가 힘겹게 자신의 날개를 펼칠 때 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지치지 않도록 곁에서 따뜻하게 응원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그리고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나의 몫인 것이다.

 

GPT가 그려준 그림 (나비 안그려도 된다고 했는데, 계속 그려넣는 이유가 뭘까.. 이 똥멍충이 GPT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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